차례 설 연휴를 앞뒤로 한 달 사이 두 번의 장례식에 차례설 연휴를 앞뒤로 한 달 사이 두 번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노모와 그의 아들이었다. 장례식에 다녀오는 날이면 발을 동동 굴리며 사는 모든 일이 쓸데없어진다. 밤기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온몸이 쭈그려져 납작해진 기분이 들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말하기의 어려움, 듣기의 괴로움늙기의 즐거움나는 한국어로 문장을 쓸 때 주어와 동사의 거리를 되도록이면 가까이 접근시킨다. 주어와 동사가 바짝 붙으면 문장에 물기가 메말라서 뻣뻣해지지만 문장 속에서 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선명히 알 수 있고, 문장이 지향하는 바가 뚜렷해진다. 주어와 동사의 거리가 멀면 그 사이의 공간에 한바탕의 세상을 차려 놓을 수 있지만 이 공간을 잘 운영하려면 글 쓰는 자의 몸에 조사들이 숨결처럼 붙어 있어야 하고, 동사의 힘이 문장 전체에 고루 뻗쳐 있어야 한다.135p.형용사와 부사를 생각함허송세월 / 김훈 산문글을 쓰는 사람들이 사람 사는 일을 정면으로 들이받지 못하고 옆으로 피해서 모호하게 얼버무릴 때 '삶'이라는 편리한 단어를 끌어와 쓰는 꼴을 흔히 보게 되는데, '고향' 식당의 '대중식사' 네 글자는 비켜갈 수 없는 삶의 현실을 내 눈앞으로 밀어붙였다. 169p.뼛가루를 들여다보니까, 일상생활하듯이, 세수하고 면도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51p.주먹도끼책을 읽고 나서앞에. 늙기의 즐거움나는 이 번쩍거리는 정보통신 시대의 낙오자다. 나는 어지러워서 그 대열에 끼지 못하고, 나의 낙오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나는 단지 숫자를 몇 개 누르면 나의 동의 없이도 언제나 나를 호출하는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이동통신 수단을 혐오한다. 나는 이 벨 소리에서 폭력을 느낀다. 175p.작가님은 생활을 통과해 나온 사소한 언어로 표현되는 세상이어야 한다고 하셨다. 결국, 글은 생활을 빼고는 쓸 수 없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를 통과하는 글을 써야겠구나. 그 안에서 성찰도 하고. 그런데 글을 쓰면 쓸수록,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글쓰기가 어렵다. 나의 생활과 책 속 세상, 그리고 현실 세계가 서로 이어지지 않아서일 것이다.혼밥, 혼술허송세월이란 하는 일 없이 세월만 헛되이 보내는 것을 뜻한다. 나의 일상은 매일 비슷하다. 블로그 글쓰기만 멈췄을 뿐이다. 기록 없는 날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모래알처럼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 공허했다.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늙기의 즐거움을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차 허송세월로 바쁘다고 표현한 작가님의 글에 잠시나마 웃음이 났다.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보가 헤아릴 수 없이 넓은 공간을 날아다니면서 소문과 소비와 이윤을 일으킨다. 정보의 비산의 거리는 무한하고, 이 무한공간 속에서 정보는 날마다 생겨나고 부딪치고 죽는다. 176p.난세의 책 읽기허송세월, 김훈 218p.춥고 긴 하루였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 자리에 누우니, 오늘의 기쁨과 슬픔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 앉아서, 이 작은 글을 쓴다. '세월호'는 지금도 기울어져 있다어린 시절 햇볕의 시간들도 생각났다. 학교 체육시간에 정수리까지 뜨겁게 달구던 여름 햇볕, 방파제 둑에 앉아 햇볕에 한껏 찡그린 얼굴, 빨랫줄에 널어두었던 햇볕에 바짝 마른 옷가지들, 햇볕에 반짝이는 개울물에 떠내려가던 하얀 샌들을 붙잡으러 물속을 뛰던 나와 동생들. 길었던 겨울도 지나고 모처럼 햇볕 소독을 하고 싶어졌다. 사는 게 별거인가.그 후 10년 동안 기업이 책임져야 할 영역 안에서 2만 명 이상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고, 그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팔다리가 부러지고 장기가 터지고 골병이 들었다. 또 정부가 책임져야 할 영역 안에서 대형 중형 소형 재난 사고가 거듭 발생해서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고, 2022년 10월 29일에는 서울 이태원에 놀러 나왔던 시민 159명이 경찰의 도움을 절규하다가 깔려 죽고 밟혀 죽었다.이 모든 비명이 모두 일상 속에서 벌어졌으니 돌아가야 할 일상은 어디인가? 세월호는 지금도 기울어져 있다. 117p.형용사가 문장의 술어가 아니라 수식어로 사용되었을 때 사물과 언어 간의 괴리는 더욱 두드러진다. '오늘은 했다'라고 말하면 추움은 어느 정도 객관화되지만, '추운 오늘'이라고 말하면 '추움'은 말하는 자의 감각의 세계를 드러낼 뿐이고, '추위'라고 말하면 양쪽을 모두 추상화해서 개념의 세계로 넘어간다. 144p.지은이 김훈 / 발행처 (주)나남 / 2024.6.20초판 발행재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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